Let's Go Full Crocodile, Ladies
A documentary that disappeared more than 40 years ago—available to everyone for the first time here—is a gift to modern-day feminists. It's belligerent, it's hilarious, and it reveals exactly what the Clinton campaign is missing.
Story by Rebecca Traister    Art by Sally Edelstein

숙녀들이여, 다 함께 행진합시다

collage

1973년 가을, ‘여성의 해(Year of the Woman)’라는 다큐멘터리가 그리니치 빌리지의 피프스 애비뉴 시네마에서 단 5일 동안 상영되었다. 아서 슐레싱어 주니어는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 사상 최고의 성과 정치의 조합’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여성의 해’는 42년 동안 사라져서, 요란하고 괴상하며 70년대적인 스타일로 페미니스트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잡아낸 작품을 우리는 그 동안 볼 수 없었다.

배경은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 대회다. 때는 1972년 7월이다. 뉴욕 하원 의원이었던 셜리 치좀은 신기원을 이룩한 대선 후보 경선 캠페인을 막 마친 뒤였다(그녀는 후에 “누군가 최초로 해야 했기 때문에 출마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베티 프리단, 도로시 하이트,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같은 아이콘들이 세운 전미 여성 정치 연맹은 최초로 정치 대회에서 여성의 힘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민주당 후보 조지 맥거번이 낙태 합법화를 공약에 넣기를 원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맥거번의 캠페인은 낙태 강령을 지지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반 낙태 운동가들을 의회에서 연설하게 했다. 이 배신은 너무나 사무쳐, 스타이넘은 결국 울며 노라 에프론에게 “그들은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 난 뒤통수 맞는 게 지긋지긋해. 친구들에게 뒤통수 맞는 게.”

정치계의 여성들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저메인 그리어, 스타이넘, 에프론 등이 쓴 마이애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자세한 글들을 읽었다(에프론의 글은 이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느낌, 소리가 어땠을지는 상상에 의존해야 했다. 강력한 여성들의 모임, 밤늦게까지 토론하고 욕하고, 행진하고, 둘러서서 드럼을 치던 그때가 어땠을지 말이다. 내가 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이애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을 격분하게 만들었던 문제 중 하나는 뉴스 카메라를 든 남성들이 그녀들의 프로젝트를 기록해 주길 거부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여성 촬영팀이 있었다. 그들은 ‘여성의 해’를 만들고 있었다.

70년대 초에 어느 팬이 구매한 이 다큐멘터리는 몇 번밖에 상영되지 않았다. 2004년 새러소타 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워싱턴 포스트는 ‘너무 급진적이고 괴상하며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그 어떤 유통사도 손대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미디어에서는 ‘사라진’ 영화로 불리곤 했다. 하지만 ‘여성의 해’는 사라지지 않았다. 산드라 호크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볼 수 있는지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몇 달 전 허핑턴 포스트의 제이슨 처키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여성의 해’는 최초로 널리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호크먼 감독의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법의 문을 열고 흑백 내러티브가 아찔한 컬러로 터져나오는 것을 보는 경험이다.

호크먼의 카메라는 프리단, 플로린스 케네디, 뉴욕의 재미있고 건방진 하원의원 벨라 앱저그의 두드러지는 목소리와 얼굴을 자주 잡는다. 우리를 바지 정장 이전의 시대로 데리고 가주는 큰 꽃이 달린 원피스를 입은 치좀은 정말 눈부시다. 코레타 스콧 킹과 셜리 맥클레인도 언뜻 보인다. 그리고 멋진 남성 선동가들도 보인다. 노먼 메일러가 페미니즘의 예상 밖의 친구로 등장하고, 진보적 배우이자 행동가인 워렌 비티는 부드러운 입술을 자랑하며 페로몬을 뿜는다. 그는 영화 제작자가 자신과 섹스를 할 생각이 별로 없어보여 당황한 기색이다.

당시 30대 중반이던 호크먼은 맨해튼 사교계에서 잘 알려진 시인이었고, 그때까지 한 번도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의 다큐멘터리 ‘김미 셸터(Gimme Shelter)’를 작업했던 프로듀서 포터 빕은 그녀에게 15,000달러를 주어 마이애미로 보냈다. 갓 학교를 졸업한 여성들로 구성된 그녀의 촬영팀은 지금 돌아보면 정말 엄청나다. 나중에 ‘할란 카운티, USA’로 오스카를 수상한 바버라 코플, 후에 ‘걸프렌즈’를 감독하고 ‘서티섬싱’, ‘마이 소 콜드 라이프’, ‘걸스’ 등의 TV 드라마를 감독하게 될 클라우디아 웨일, ‘밸리 걸’, ‘넝쿨 장미’, ‘할 베리의 라이징 스타(Introducing Dorothy Dandridge)’를 감독하고 미국 감독 조합장도 맡은 마사 쿨리지 등이 참여했다.

이 재능있고 야심찬 젊은 여성들은 혁명적인 여성 운동의 연료가 된 에너지와 분노를 담아냈다.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이나, 시와 의상을 부끄러움 없이 정치적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시 잘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미국 대선을 관찰할 훌륭한 렌즈 또한 제공한다. 여성들이 남성 후보에게서 영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여성의 해’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벨라 앱저그는 높은 사람들을 비웃고 연단에서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1972년의 백인 페미니스트들(공정하게 말해서, 흑인 페미니스트들도)은 여성들을 ‘검둥이처럼 만든다’고 너무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성들이 우리 정치 체제를 얼마나 격렬하게 – 그리고 훌륭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 공격했는지를 알려준다.

영화 속의 민주당 남성들은 상냥하지만 여성의 평등을 무시한다. 반문화의 영웅 제리 루빈은 호크먼에게 맥거번이 대통령이 되면 여성과 게이들에게 정말 좋을 거라고 열성적으로 이야기한다. 한편 살해당한 인권 운동가 메드가 에버스의 형이자 미시시피 주 파예트의 시장인 찰스 에버스는 남성들에게 필요한 보살핌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 ‘남성이 되고 싶어하고’ 트럭을 모는 여성들에 대해 절망한다.

호크먼과 워싱턴 포스트의 저널리스트 아트 부컬드의 대화가 영화를 관통한다. 여성들이 이 대회에서 진지하게 고려 받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냐고 호크먼이 묻는다. 부컬드는 인정한다. “하지만 나로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거리에 젊은 여성들이 춤을 추고, 예쁜 여성들이 스커트와 새들 슈즈 차림으로 폼폼을 흔들고- 그런 건 좀 그립다.” 영화 속 상당수 남성들과 달리, 부컬드는 자신의 때가 끝나가고 있으며, 크게 보았을 때 그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아예 인지하지 않으려 하는 남성들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존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밑에서 일했고, 당시에는 맥거번과 일하던 민주당의 실세 프레드 더튼에게 호크먼은 여성이 후보로 나서고 있는지 묻는다. 더튼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 이제까지 그들은 주로 보육원 등에서 일해왔지요.”

조지 맥거번의 멋진 캠페인 매니저 게리 하트도 있다. 이로부터 2년 후에 상원의원에, 10년 후에 대선에 출마하게 될 그는 민주당의 미래를 상징한다. 호크먼은 맥거번이 뉴욕 의원 셜리 치좀 등의 여성을 부통령 후보로 고려할 것인지 하트에게 묻는다. 그는 ‘만족스러운 여성 후보’가 없다고 대답한다. 모욕적이다. ‘만족스럽다’는 게 무슨 뜻일까? 호크먼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 말이죠.”

하트와의 이 대화는 여성들이 정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는 동시대의 진보층에게 사랑 받은 사람이며, 1998년 대선 캠페인이 섹스 스캔들로 망가지지 않았다면 90년대에 대통령까지도 될 수 있었던 사람인데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최초의 흑인 여성인 치좀에게 경의를 표해야겠다는 의무감조차도 느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1972년에 치좀은 이미 공화당 상원의원 밥 돌과 손을 잡고 여성, 유아, 어린이(Women, Infants and Children; WIC) 프로그램을 만들어 빈곤층에 대한 식량 배급표 지원을 확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앱저그와 함께 연방 차원에서 육아에 보조금을 주는 법도 만들었다. 그런데도 하트는 그녀에게, 그녀가 막 치렀던 역사적인 선거에 대해 존중을 담은 말 한 마디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별 상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에게 화를 낼 것인가? 중요한 사람들은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여성들이나 화를 냈겠지.

현재 북아일랜드 미국 특별 대사인 하트에게 이메일로 묻자, 그는 이동 중이라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나의 과거 행적이 보여주듯, 지난 50년 동안 나의 견해는 180도 바뀌었다고 말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건 오래 전 일이다. 현재 진보층의 영웅인 버니 샌더스는 1972년에 쓴 에세이에서 모든 여성은 남성 세 명에게 강간 당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그 에세이는 … 내가 지금이라면 쓰지 않을 방식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과거는 정말 엄청나게 오래된 것은 아니며, 현재 정치 상황에 적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2015년에도 정치계의 여성들에 대한 분개를 품은(무의식적인 경우가 많다) 진보를 자청하는 남성들은 많이 있다. 그들은 (여성들이) ‘한 가지’만 우선시한다며 짜증을 내고, 주, 지역, 연방에 여성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적다는 것보다 선거에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단언한다. 그들의 영향력은 최근 아이오와 주 여론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도가 민주당 여성들 중에서는 59%, 남성들 중에서는 39%로 나온 이유를 설명해 줄 지도 모른다. 이런 남성들에게 익숙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놀리고 우스개로 삼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보다 더 우습지는 않다. 나는 그들은 스스로 의식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무섭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당시와 지금의 이슈들은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다. 식량 배급표가 위험에 처해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육아는 지금도 환상이다(적어도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다). 영화 속 전당 대회 이후 1년 뒤에 대법원에서 판결한 ‘낙태 이슈’는 지금도 민주당원들이 느끼는 불안의 근본에 자리한다. 만약 2016년에 공화당이 승리한다면, 여성들이 패배했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패배하게 될 것이다. 사법부는 보수주의로 고정될 것이다. 낙태 금지법 위헌 결정은 뒤집힐 가능성이 크며, 피임도 어려워질 것이다. 투표권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여성의 해’가 다시 나타났다. 이 영화는 여성들이 정당한 자기 몫을 찾기 위해 한때 얼마나 공격적으로 싸웠는지를 일깨워준다.

‘여성의 해’에 나오는 페미니스트들의 저항 스타일은 그 당시가 어땠는가를 보여준다. 호크먼과 케네디가 이끄는 시위자들은 댄 래더와 마이크 월러스 등의 남성 뉴스캐스터들을 덮치고 낙태 논란이나 치좀을 왜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지 화를 내며 묻는다. 남성들은 그저 말없이, 얌전히 가만히 앉아있는다. 웃는 남성들도 있다. 여성들은 더 화가 난다. “우리가 바로 배제된 사람들이다.” 호크먼이 외친다. 카메라를 든 남성 하나는 그녀에게 닥치라고 한다.

갑자기 호크먼 등 여성 일부가 악어와 미키 마우스 가면을 쓴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우리는 존엄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그들은 종이 가면 뒤에서 외친다.

1 이 영화의 멋진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호크먼은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왜 우리는 사진가 수백 명들에게 둘러싸였던 걸까? 왜 사람들은 우리에게 달려와 만지고 둘러쌌을까? 리즈 리네이에겐 가슴이 있었기 때문이다. … 그게 왜? 그녀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하지만 만약 남성이 큰 성기를 드러내고 전당 대회에 나타났다면…”

뉴스캐스터들을 만나기 전 장면에서 호크먼은 리즈 리네이라는 스트리퍼를 초대해 금빛 모조 다이아몬드 드레스를 입히고 전당 대회에 데리고 간다. 그녀가 나타나자 전당 대회는 사실상 중단된다. 남성들은 카메라를 들고 리네이에게 몰려든다. 한 기자는 그녀의 신체 사이즈를 묻는다. 1

시위자들의 바보 같은 가면이 “우리는 존엄한 인간이다”라는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는 것은 정당할 수 있어도, 매체가 스트리퍼로서 등장한 그들에게는 군침을 흘려도 대선 후보로는 다뤄주지 않는데 그들이 어떻게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볼만 하다. 다 함께 행진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미키 마우스 가면을 쓰고 여기에 있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성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들을 괴물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시인으로서, 괴물이 되자고 말한다.” 호크먼의 말이다.

괴물이 되어 사과하지도, 세세한 것을 따지지도 않고 분노를 표현하라. 여성들이 뉴스캐스터들에게 소리치자, 남성 몇 명이 그들에게 다가와 물러서라고 한다. 그들 중 하나는 총명하고 재미있고 눈부신 플로 케네디를 화나게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당신은 대체 왜 장비를 벗는 거야? 빌어먹을, 당신 손 치워. 날 만지지 마, 개새끼야.” 그녀가 외친다. 현장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뒤에서 케네디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여자들 만지지 마. 다음 번에 여자를 만지는 개새끼는 불알을 걷어차일 줄 알아.”

아,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다. 특히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담론은 다시 활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온건하니 말이다. 기술 덕택에 훨씬 많은 다양한 여성들이 싸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페미니스트 운동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더 강해진 현재, 반드시 옳은 말을 해야 한다. 의도는 좋으나 숨막힐 것 같은 대본을 따라야만 한다. 말 때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위험한 말일 수 있다는 경고 없이, 안전 공간을 침범하는 게 아닌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는 여성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속이 시원하다.

“비키지 않으면 우리가 밟고 간다.” 케네디의 주도 하에 여성들은 ‘공화국 찬가’를 개사해 부른다. 공격적인 분노를 담은 가사가 위안을 준다. “내 눈은 여성들의 분노의 불꽃을 보았네.”

오늘날의 논리는 이런 종류의 분노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당시 유용했던 기행들이 이제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우리가 내부에 이토록 가까이 왔는데 우리를 다시 외부인처럼 만들 뿐이라고 말한다.

2 2012년에 공화당 전국위원회 레인스 프리버스 의장은 공화당의 ‘여성에 대한 전쟁’은 ‘애벌레에 대한 전쟁’과 같다며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내부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클린턴은 당선 확실과는 거리가 멀고, 의회의 19%만이 여성이고 상원에 진출한 흑인 여성은 역사상 한 명뿐이다. 여성들의 민주당과 공화당 안에서의 정치적 행로에는 높은 기준과 이중 잣대, 은근한 모욕, 명백한 모욕 2 , 불쑥 튀어나오는 미모에 대한 언급 3 , 자금 모금 어려움 등이 존재한다. 여성이 출마한다는 사실 자체가 조롱을 산다. 상원 공화당 원내 대표인 미치 매코널이 클린턴이 ‘젠더 카드’를 사용한다고 이 달 초에 불평했을 때처럼 말이다.

3 버락 오바마가 아무 이유없이 캘리포니아의 카말라 해리스를 ‘가장 외모가 뛰어난 법무장관’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가? 빌 클린턴이 작년에 켄터키 주지사 후보 앨리슨 룬더그랜 그라임스 선거 유세를 함께 다니다 그라임스가 라이벌보다 ‘훨씬 더 예쁘다’라고 했던 것은 기억하는가? 어느 국회의원이 커스틴 질리브랜드에게 “당신은 뚱뚱해지지 않도록 운동을 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이런 걸 보면 매코널이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불알을 걷어차겠다고 위협하는 성난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충분히 들 법하다. 젠더 카드를 보고 싶어? 우린 젠더 카드를 쓸 줄 아는데.

우리가 아무리 점잖게 행동해도, 힘있고 가부장적인 남자들 – 때로는 진보적인 남자들조차 – 은 우리가 시끄럽게 군다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분노를 부정하고 요란하게 내세울 권리와 이유를 양보하면, 우리는 3세기에 걸친 젠더와 인종 차별이 끝났다, 이제 평등한 세상이 왔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지지하는 셈이 된다.

이 ‘사라진’ 영화가 여성들에게 공손한 껍질을 벗어버리고 좌절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줄지도 모른다. 2008년 클린턴의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그녀가 매체의 공격을 잔뜩 받고 더는 잃어버릴 것이 없는 것 같았던 때였다. 뉴 햄프셔 주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정감가는 겉모습의 균열을 드러냈다. 그녀는 “내 셔츠를 다림질 해”라고 외치는 남성들을 “건재하는 성 차별주의의 잔재”라고 불렀다. 잘난 척하는 MSNBC의 크리스 매튜스가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물론 그녀는 조금 허둥거렸다. 그 사건은 클린턴이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나는 늘 다른 것을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분노와 좌절을 억누르고 감추라는 가르침을 받아온 여성들에게 있어,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분노의 표현은 눈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스타이넘이 마이애미의 길에서 에프론에게 울음을 터뜨렸겠는가?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효과는 있었다. 클린턴은 놀라고 언짢아한 것 때문에 뉴 햄프셔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여성들이 그녀에게 지지를 퍼부었다.

클린턴은 자신의 좌절이 가졌던 효과를 기억해야 한다. 특히 주위에서 단정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할 때는 말이다. 여성이 다음 큰 벽을 넘어서, 아내가 아닌 역할로 백악관에 들어가고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숫자가 아닌 여성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과 주 의회 의원들이 나오게 되려면 우리는 조금 더 비열하게 기행을 하고, 분노를 조금 더 강렬하게 표출하고, 덜 공손한 사과로 여성의 분노의 불꽃을 지필 필요가 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상기해주듯이, 여성도 꿈을 꿀 수 있다.

To watch the full film, purchase here.

Credits

Story - Rebecca Traister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뉴욕(New York)과 더 컷(The Cut)에 기고한다. 2010년에 발표한 책 ‘큰 여자애들은 울지 않아(Big Girls Don’t Cry)’는 2008년 선거에서의 여성들과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다.
Art - Sally Edelstein
샐리 에델스타인은 전국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수상 경력이 있는 뉴욕 아티스트이다.
Development - Dan McCarey
Photos courtesy of - Getty Images & AP

In recent years, Sandra Hochman has grown interested in empowering young people. Her book for children, "King Timmy the Great," written with Tad Danielak, can be purchased from Dataworks at 212-967-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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